백인 슈터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운동능력이 좋지 않으나 열심히 하는 슈터를 좋아한다.
얼마전 밀워키 벅스에서 은퇴한 카일 코버나 마이애미 히트에서 고생 중인 던컨 로빈슨 류의 선수들을 좋아한다. 특히 카일 코버를 좋아한다. 나와 같은 류의 선수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난 늘 체력장 하위 30%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남들보다 달리기가 뒤쳐지는 것을, 힘에서 밀리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팔자. 운동능력이 좋지 않으면 찬스를 잡기 위해선 부지런해야한다. 슛만이 살길이다. 그것도 골대에서 가까운 곳에서 하는 슛은 욕심을 낼 수 없다. 골대 가까이 가기 위해선 재빠르고 드리블이 좋아서 수비수를 제칠 수 있거나, 키가 커서 수비수 위로 손을 올려 슛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골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비수들의 방해를 피해 빠르게 슛을 쏠 수 있어야 하고 넣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슛기회를 만들기 어려우니 패스를 잘 받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스테픈 커리도 어쩌면 그런 류의 선수로 볼 수 있겠지만 그는 데뷔 때보다 볼핸들링 실력을 몇배로 키웠고, 기본적인 스피드를 가진 선수다. 게다가 아버지가 NBA 선수 아닌가 말이다. 나로선 공감대를 가지기 어렵다. 타일러 히로도 비슷하다 말하겠지만, 재수없게도 지나치게 빠르다. 옛날 선수 중에선 제프 호너섹이 생각난다.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어느 곳에서나 슛을 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던 일화가 생각난다. (그땐 싸이월드에 그런 글을 끄적거렸었더랬다. ) 심지어 그 양반의 점잖고 침착하고 허여멀건 얼굴을 보고나면 이 사람이 진짜 운동선수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다시 카일 코버 이야기를 해보자.
카일 코버는 뭐랄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선수랄까… 그런 느낌이 있다. (잘생기기도 했고)
2라운드에서도 후반 순위(2라운드 22위, 전체 51순위)에다가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 (201cm), 덩크는 할 수 있을지나 잘 모르겠을 그런 운동 선수다.
너무나 전형적인 인간승리의 길을 걸어왔달까? 프로에는 간신히 입단했지만 본인의 실력을 갈고 닦아 점차 인정받아 나중에는 올스타까지 나가게 되고 17시즌을 NBA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주전으로 뛰고, 1,232경기를 뛰며, 통산 11,953득점에 3점슛은 2,450개를 넣어 NBA 역대 3점슛 성공갯수 5위를 달리고 있다.(1시즌 정도 억지로 더 뛰었더라면 4위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5위는 따라잡히더라도, 10위 안에서는 꽤 오랜 기간 자릴 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3점슛이 트렌드가 아닌 시절과 3점슛이 트렌드인 시절을 모두 관통하여 살아남은 선수다. 03/04 시즌에 데뷔했는데 그 당시 NBA 팀당 연간 3점슛 시도횟수는 1,224개인데 은퇴하던 시즌(19/20)의 시도횟수는 2,408회로 2배로 늘어났다. 초반엔 정확도로 살아남았을 것이고 후반부에는 그 정확도로 인해 쓰임새도 늘어난 경우가 아닐까. 마치 내가 수능 덕분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게 된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별다른 일화도 없는 재미 없는 선수다. 그렇다고 선행으로 가득한 선수냐면 그건 내가 영어가 짧아 찾아보지 못했으니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자.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얼핏 방송쪽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들었다. 난 이 선수가 더욱 회자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소리소문없이 은퇴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이 선수가 FA로서 영입하면 어떨지 하며 거론되는 것조차 듣지 못했다. 나이도 이미 많기는 했다.
이런 선수들 - 운동능력은 없지만 슛하나로 먹고 사는 - 또 나와서 날 즐겁게 해주고 내 농구 인생을 조금 더 길게 해줄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이애미의 던컨 로빈슨이 그렇듯이, 또, 대한민국의 이현중 선수가 그렇듯이 보란듯이 성공하여 날 즐겁게 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