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대해 떠올리라고 하면 서울 남서쪽의 어느 고등학교에 그늘막도 없는 스탠드에 앉아 물인지 땀인 모를 것들을 뚝뚝 흘리며 앉아있는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떠오른다. 교복 차림이었던걸로 봐선 방학은 아니었던 것 같고,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아니었을 까 싶다. 이미 몇 게임을 치룬 탓에 남학생은 꽤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 몇 게임 중 이긴 게임이 진 게임 보다 훨씬 많아 뿌듯해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 있던 프로스펙스 문구가 달린 농구대 2개 사이에서 뛰고 있던 다른 친구가 한게임을 더 하자고 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운동을 통 못한다고 평생 생각해왔던 그의 자격지심이 조금씩 작아짐과 더불어 친구들의 무리에 당당히 끼어 있다는 안정감이 동시에 들었으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또 하자고? 너무 힘든데?” 라고 내뱉었지만 엉덩이는 이미 들썩거리고 있었다. 10대 후반의 남자 아이의 체력이란 그런 것이기도 했다. 땡볕에 뜨끈해져오는 머리와 피부에 닿는 햇빛이 그 순간은 즐거웠다.
여름은 그런 것이었다. 땡볕이 내려쬐고 땀이 비오듯 쏟아져도 내가 무엇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더 만들어주는 적당한 시련이 있는 그런 날씨. 헉헉대고 널부러져 있다가 주머니에 있는 몇백원과 1,2천원을 모아 산 콜라와 오란씨를 벌컥벌컥 마시는 그런 날씨.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CF에 나올 법한 멋진 남자아이가 바로 나인 것 같았다. 구리빛의 피부를 가진 잘생긴 모델이 음료를 들이키는 광고의 그 순간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성장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몸과 마음을 함께 어우르는 교감, 음료수를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하고 깔깔대며 싸우지 않고 나누어 마시는 그 순간에 나는 훌쩍 커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많은 여름의 순간이 있었고 즐겁거나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만, 여름의 이야기라고 하면 난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