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상다반사

김성근 감독과 저녁이 있는 삶

4scottie 2015. 4. 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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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유력한 감독 후보로 떠오른 순간부터 든 생각이다.


그는 정말 훌륭한 감독이다. 그가 맡았던 팀들은 대부분 성적이 좋았다. LG트윈스의 준우승, 왕조라 불리기에 어색하지 않았던 SK와이번스.심지어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이 없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성적이고 팀이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맡았던 LG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한 당시 삼성 김응룡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야구의 신인줄 알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그날 이후 김성근 감독의 이름 앞자리에는 '야신'이라는 단어가 호처럼 붙었다.

우리는 우리가 제공한 노동만큼 댓가를 지불받기를 바란다. 칼퇴근이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가 우리의 간절한 희망사항일 만큼 한국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 이 단어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만한 멋진 구호다. 저 구호를 들고나왔던 정치인과 별개로 저 구호에 열광한 노동자는 나만이 아니리라. - 난 저 구호가 문재인의 것이기를 바랬다.
'저녁이 있는 삶'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 혹 어떤 노동자에게 '저녁'이 없다면 그 '저녁'에 해당하는 댓가가 주어져야 한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 SNS에 떠돌았던 스케줄표 하나가 있다. 김성근 감독이 맡은 팀의 훈련 스케줄과 타구단의 것을 비교한 것이었다. 얼핏 보더라도 그의 팀이 소화하는 훈련량은 타구단의 몇 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SNS에는 한화의 유명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제 너희들 편한 시절 다갔어'라는 메시지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화 선수들의 저녁이 있는 삶 따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2015년도 한화의 성적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을 것다. 혹 순위가 낮더라도 절대 쉽게 지지 않는 터프한 팀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팬들과 구단주는 만족할 것이다.


내 또래의 프로선수들이 한 명씩 은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들은 이제 생계를 어떻게 꾸릴지 궁금했다.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는 이동국은 연봉이 많은 편이니 다행이겠다 싶었다.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생계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는 노동자들다. 한화의 선수들도 노동자다. 그들은 이제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보며 즐기고 있을 것이다. 프로선수들의 특수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김성근 감독을 비난하냐는 걸 수도 있다. 팬으로서 프로선수들에게 그 정도도 요구 못하냐고 말할수도 있다. 사실 마음 속으로 제일 두려운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다. 다만 노동력을 팔아 생활을 이어가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의 저녁도 한번쯤 걱정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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